더크워스는 성공과 성취에 대해서 갖고 있는 두 가지 요소인 재능과 노력에 대해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이중적이며 잣대에 대한 예시를 들고 있다. 미국인을 대상으로 ‘재능과 노력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를 묻는 전국적인 설문 조사 결과, 노력이 재능보다 중요하다고 응답한 사람이 2배 정도 더 많았다고 한다. 만약, 이 설문 조사 결과가 신뢰롭고 타당하다면 우리 삶에서 이러한 증거가 일관되지 드러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한 연구자가 동일한 사람에 의해 연주가 된 피아노 연주곡을 피험자들에게 들려 주며, 한 명은 일찍이 선천적인 재능을 드러낸 ‘재능형'으로, 다른 한명은 강의 성취동기와 끈기를 보여준 ‘노력형'으로 소개했다. 실험 결과 피험자들은 본인들이 재능과 노력에 대해서 밝힌 기존의 신념과 상이하게 판단을 했다. 재능형의 피아니스트의 곡이라고 소개받은 곡의 연주가가 향후 성공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응답했다.
재능이 중요한 성공 요소라고 인식되는 예술 분야이기에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일까? 혹시 근면과 노력이 중요하다고 일컬어지는 기업에서는 어떤 결과로 나타날까? 책에서는 다양한 경력을 가진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 연구 결과를 소개한다.연구자는 피험자를 모집해서 무작위로 두 집단을 구성해서 각 집단의 사람들에게 어느 기업가가 쓴 자기소개서의 내용을 읽어 주었다. 이 때 구분된 피험자의 한 집단에는 ‘근면함, 노력, 경험으로 성공한 노력형 기업가'의 자기소개서를 읽어 주었다. 나머지 한 집단에게는 ‘타고난 능력으로 성공한 재능형 기업가'의 것이라고 소개하며 자기소개서를 읽게 했다. 그런 다음, 노력형과 재능형 기업가가 녹음했다는 사업제안서를 들려 주었다. 연구 결과, 재능형이 노력형에 비해 고용될 가능성이나 성공할 가능성, 사업제안서의 수준을 더 높이 평가받았다.
우리는 매스컴을 통해 스포츠, 예술, 경제 방면에서의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는 인물들을 많이 접한다. 어린 나이 때부터 탁월한 기량을 뽐내는 사람을 ‘유망주'라고 일컬으며 그 재능과 천재성에 주목하고 소개하는 내용을 많이 접한다. 왜 사람들은 누군가 지니고 있다고 ‘확신'하는 천재적 재능에 열광하기를 좋아하는가?
이 문제가 단지 최근의 관심사가 아님을 더크워스는 소개한다. 19세기 독일의 철학자인 니체 역시 이를 두고 깊은 고민을 했던 흔적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니체는 말한다.
“모든 완전한 것에 대해 우리는 그것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묻지 않는다. (중략) 아무도 예술가의 작품 속에서 그것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보지 못한다. 그 편이 나은 점도 있다. 작품으로 완성되는 과정을 보게 되는 경우에는 언제나 반응이 다소 시들해지기 때문이다.”
더크워스는 니체의 말을 인용하며 이렇게 덧붙인다. 사람들은 일상성보다는 신비함을 더 선호한다고. 더크워스는 다시 의문을 제기한다. “하지만 무엇 때문인가? 이렇게 우리 자신을 기만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 역시 니체의 말을 인용하여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의 허영심과 자기애가 천재 숭배를 조장한다. 왜냐하면 천재를 마법적인 존재로 생각한다면 우리 자신과 비교하고 우리의 부족함을 느끼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중략) 누군가를 ‘신적인 존재'로 부르면 우리는 그와 경쟁할 필요가 없어진다.”
더크워스가 소개해서 전해준 니체의 말을 접하며, ‘아~! 그렇다.’하는 공감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현재적 비탁월성이나 무능에 대해서 핑계를 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는 것이다.
‘저 사람은 타고 났어. 천재야!’
내가 다른 어떤 사람보다 못난 존재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열등감을 일으킨다. 열등감은 인간에게 발전을 위한 동기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스스로를 열등한 존재로 규정하며 작고 초라하게 위축시키는 기제로도 작용한다. 하지만, 내 자신의 그 열등성이 내가 평균 이하에서가 아니고, 워낙 뛰어난 ‘넘사벽'과 같은 존재의 극단의 탁월성과 비교했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위로한다. 또한 더 나아가 누군가의 탁월성을 알아 줄 수 있는 안목이 나에게 있다는 그 자체는 내 자신을 은근히 분별있는 사람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만약 그 탁월성이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노력의 산물에 가까운 것이라면 어떻게 되는가? 우리는 이 사실을 수용하는 그 순간 ‘핑계꾼'과 같은 존재가 된다. 그런 다음에는 구구절절 이유를 찾아야 스스로가 안심할 수 있게 된다.
- “뭐, 그 정도 실력을 갖추면 좋지만, 내가 직업으로 그런 일을 택할 것도 아닌데, 굳이 그럴 필요 있어?”
- “나는 그것보다는 다른 일에 더 관심이 많아.”
- “어느 분야에 일등이 되려고 안달복달하며 살 필요가 있어? 피곤하게…”
이렇게 스스로로 달래고 위로하는 접근은 분명 필요하다. 정신적인 건강을 유지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누군가의 탁월성을 재능으로 인정하고 바라볼 때는 “우와~”하며 탄성을 발하며 동경하던 스스로가 노력을 해야 하는 현실적 상황에 직면하고는 그렇게 노력하지 않을 100가지 이유를 찾기에 바쁘게 된다.
이 글을 적으면서 내 자신을 향해 자주 묻고 있는 중이다.
“재능이야 노력이야?”
내 이성적 판단은 ‘노력’에 손을 들어 주지만, 오랜 자동적 사고의 산물로 내 뇌는 ‘타고난 재능’이 주는 신비한 매력에 맘을 빼앗기고 있음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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